Saturday, April 1, 2023

나의 천사 희동이

 

희동이가 나를 떠났다.

괘씸한 고양이. 내가 얼마나 지를 사랑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다니.


2011년 말에 다니던 회사가 폐업을 했다.

달아오르던 태양광 산업이 갑자기 움츠러들면서다.

산업이 통째로 없어졌던 그 시기에 내가 갈 곳이 없었다.

나는 태양광 산업에서 전문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였으나 산업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 내 기술을 필요로하는 회사도 다 같이 순차적으로 없어져버렸다.

갈 곳이 없어서 2012년에 반 강제 창업을 하고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이 없었다.

사업 아이템이 계속 엎어지면서 4년을 버틴 2015년 말.

와잎과 아들이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단다.

사실 신혼 때 데려온 멍멍이 까미를 2012년 2월에 14살로 보내고, 상실감이 커서 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자신이 없었기때문에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

하지만 나도 내심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었다.

삼시세끼에서 나온 벌이라는 흰 고양이를 본 후에 부쩍 심해졌었을 즈음이었다.

까미는 데려오고 장염 등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면서 우리가 고생을 많이 했었기때문에 고양이는 멍멍이보다 수명도 길고 손도 덜 가며, 사람에게 내외를 하니까 정도 덜 들 것이기때문에 보낼 때 마음도 덜 아프겠지 하며 결국은 고양이를 들여 놓기로 하였다.

와잎 아시는 분 어머님 댁 고양이가 터키시 앙고라인데 놓아 기르니까 주변 숫놈 길냥이하고 자꾸 새끼를 만드는 바람에 분양을 한다고 해서 한 녀석 데려오기로했다.

와잎이 새끼 사진을 받아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참 이쁘다 녀석.

10월에 태어났고 아직은 젖을 더 먹이면 좋을 것 같아서 12월에 데려오기로 했다.

데려온다고 한 날, 한 달음에 집에 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집에 들어갔더니, 와잎과 아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고, 고양이 어디있냐고 하니까 황당한 표정으로 우리도 데려오고 나서 어디로 도망가서 숨는 바람에 못 찾고 있다고 한다.

이런~ ㅋ

와잎은 개처럼 사람을 따르는 것 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데려오고 바로 사라져 버려서 찾지도 못할 줄은 몰랐다 한다.

반려동물 데려온 보람이 없다고 푸념을 했다.

즉시 찾기 시작해서, 피아노 뒤 공간에서 찾아냈다.

그 이후에도 수시로 사라져서 그때마다 내가 찾아냈다.

책장 안 책들 뒤에서, 열어 놓지도 않은 옷장 문 밑의 틈으로 들어간 놈을 옷장 안에서, 짐을 보관하는 선반 뒤에서 등등.

그때 희동이는 지금봐도 이쁘니 그때는 얼마나 이뻤겠는지.






흰색이라서 희동이라고 이름을 지어줬고, 희동이는 나에게 힐링 자체가 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서 일할 때 옆에서 나를 보며 꼬박 꼬박 조는 모습 자체가 나에게 편안함을 안겨 주었고, 식구에게 적응이 되고나서는 사람 주변에 늘 있는 우리 식구들의 또 다른 가족이었다.

장난도 잘 치고, 내 장난도 잘 받아주는 희동이.

그리고,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희동이 들어오고 나서 사업에서 기회도 생기고 조금씩이지만 사업 자금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어서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게되었다.

그리고 2016년 말에 현재 회사에 들어오면서 사업을 접게 되었다.

말이 사업이지 이익이 거의 나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때문에, 취업 기회가 생겼을 때, 50이 다 되어 가는 나에게 그것은 큰 운이었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사업하던 5년 간 진 빚을 점차 갚으며 생활에 안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새로 온 회사에서 내가 개발한 중요 장비가 성공을 거두면서 직장에서 자리도 잡혔다.

그렇게 다시 일상이 바빠지면서, 그리고 일로 인해 힘들어지면서, 집에 와서 가족과 희동이를 보며 다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문득 문득, 희동이가 나에게 구세주 천사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동이가 들어온 후에 모든 것들이 나아졌고, 삶의 저 밑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기때문이다.

운명이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내 운이었을테지만, 나중에 내  최근의 인생이 풀려왔던 싯점과 희동이가 들어온 싯점을 생각해보니까 자꾸 희동이는 내 천사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희동이는 나에게 정신적인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나이가 먹고 살이 찌면서 어느 덧 9kg을 넘어갔던 희동이 궁디팡팡을 해 줄 때 그 녀석이 골골대던 그 소리에 힐링을 했고, 직장이 멀어서 주말 부부를 하던 내가 주말에 왔을 때 저녁 먹고 맥주 한 잔 하고는 소파에서 살짝 잠이 들었을 때 내 몸에 붙어서 체온을 나눠주던 그 녀석 덕에,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덜 수 있었다.

외동이었던 아들 녀석에게도 희동이는 절친었다.

식구 중에서 희동이가 제일 따랐던 사람이 아들이었다.


그렇게 키우다 보니까 고양이에 대해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고양이는 개처럼 주인을 안 따른다라는 나의 편견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실.

고양이도 주인을 좋아한다.

사람을 따르고 옆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표정이 잘 안나타나기때문에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나도 가졌던 것이다.

우리 희동이는 처음에는 그럼 그렇지 고양이는 사람을 안 따라~ 하고 실망했던 와잎에게도 많은 사랑을 주고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다.

그렇게 희동이는 우리 가족이 되어갔다.

소중하고도 소중한 우리 식구, 가족, 그리고 나에게는 천사.

그리고 희동이는 점점 멋진 고양이가 되어갔다. 눈이 크고 맑은 우리 희동이.


그러다가 2020년 3월에 둘째를 입양했다.

기르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고아가 된 냥이 둘 중에서 한 녀석을 데려왔다.

이름은 상추였고, 우리도 그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했다.

자기 이름을 이미 잘 알아듣고 있었기때문이었다.

희동이랑 같은 2015년 생 고양이었다.

처음 상추가 왔을 때 가뜩이나 겁 많은 희동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걱정했지만, 우리 착한 희동이는 결국 상추도 받아들였고, 시간은 제법 걸렸지만 결국 친한 친구가 되었다.

둘이서 투닥 투닥 잡기 놀이도 하고, 상추가 어딘가에 갇혀있으면 우리를 찾아와서 친구 갇혔다고 우리에게 야옹 야옹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우연인지 알았으나, 상추가 갇힐 때마다 희동이가 와서 울었으니, 우연은 아닌 것 같다.

희동이는 상추에게도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이 두 녀석을 데리고 있던 시간이 우리에게는 꿈 같았다.

경제적으로 너무도 어려워서 신용불량 위기까지 갔던 나는 반려동물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희동이가 들어온 이후로 살림이 점점 나아졌고, 상추 들어온 이후로도 회사에서 추진하던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이제 그 프로젝트 결과도 성공을 앞두고 있어서 나는 고양이와 잘 맞나? 하는 행복한 상상을 가끔 하고 있다.

심지어 평생을 아파트와 빌라만 살던 내가, 작지만 신축 타운하우스 한 채를 구해 작년에 이사를 했다.

꿈에만 그리던 정원이 딸려 있는 집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집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우연찮게 선택한 곳이, 나에게 참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구조에 또 타운하우스 시행사도 잘 만났고, 작년 여름과 겨울을 나고 보니, 철콘 구조에 단열이 잘 되어 있어, 난방비 대란이 있었던 작년 겨울도 LPG를 땠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많이 나온 달에도 가스비 25만원으로 선방할 수 있었다.

해가 바뀌고 봄이 되면서 나무도 심었다.

주목나무 세 그루를 가져다가 심었고, 소나무도 심었다.

우리 희동이는 겁이 너무 많았고 소심한 고양이었다.

다른 사람 발자국 소리만 나도 3층으로 달려가서 숨어버렸다.

그랬던 희동이가, 작년 여름에 이곳으로 이사와서 몇 주를 아들 방 이불 안에 들어가서 숨어 있던 희동이가, 낮에 집에 있는 와잎 말에 의하면 정원으로 살살 발을 내 놓기 시작했단다.

지난 겨울에 눈 많이 온 날에도 살짝 나가서 눈도 밟아 봤다고 하고, 주목나무 심고 나서는 조심 조심 정원의 잔디를 가로질러서 주목까지 가서 냄새를 한참 맡는다고 했다.

오, 희동이도 집 밖을 나오는구나?

상추는 워낙 활발해서 진작에 정원에 나오기 시작했었다.

이제 희동이도 제법 정원을 나오고 싶어해서, 방충망 열어 달라고 야옹거리기도 하고, 테라스에 나오면 햇빛을 맞으며 뒹굴 거리며 좋아한다.









그래, 울 냥이들이 맘껏 놀게해주자.

싸리나무 울타리 발을 사서 기존 펜스를 덮어서 설치해 주기로 했다.

설치되어 있는 펜스는 구멍이 넓어서 냥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었고, 외부 길냥이나 멍멍이 또는 산 짐승들이 내려올 수 있어서, 잔디에 기생충이 옮겨올 수 있었기때문이다.

싸리나무 울타리가 제법 비쌌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구매해서 그 주 토요일, 와잎과 열심히 설치를 했다.

그 사이 희동이는 또 나와서 주목나무 냄새를 열심히 맡았다.

희한하게 주목나무 세 그루 중에서 아들이 선택해서 데려온 주목나무 냄새만 맡았다.

울타리 치랴, 희동이 감시하랴 마음이 바빴지만, 희동이를 다시 집 안에 넣어 놓자니 미안해서 자주 곁눈으로 지켜보았는데, 한참을 주목나무 냄새를 맡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주었다.

20 여미터 정도를 울타리를 치고, 집 옆 테라스 공간과 펜스 사이에는 방묘문을 달아서 냥이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희동이가 2층으로 올라가서 안 내려오길래 와잎이 1층에 데리고 내려왔지만 곧 다시 올라갔다.

힘이 없는 것 같았다.

이틀 전에 목요일에 아들이 왔을 때부터 배가 빠르게 볼록 거리는 것을 보았었고, 숨이 가쁜가 보다 했었는데다가, 토요일 오후에도 창 밖을 보며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희동이 배가 또 빠르게 볼록거리고 있었다.

개구 호흡을 하지는 않았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녀석이 왜 그러나, 전에도 몇 번 그랬다가 말았으니 괜찮아지겠지 하며, 희동이와 상추가 즐겁게 뛰어 놀 상상을 하며 울타리 작업을 계속 했었다.

그렇게 울타리와 방묘문 설치 작업까지 마치니 저녁이 되어서 식사를 하고 노곤해져서 소파에서 졸았다.

눈을 떠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이제 방으로 가서 자야지 하며 이층으로 올라오는데 문득 낮에 봤던 희동이 배가 생각났다.

자러 가면서 한 번도 고양이들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고양이는 개처럼 잔병치레 안하고 수명도 길다고 알고 있었고, 희동이나 상추 모두 8살이 안되었기때문에 이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날은 뭔가 찜찜했다.

처음으로 희동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보통 때 희동이가 자고 있는 곳이 아들 방이었기때문에, 안방으로 가다가 무심히 들어가보았다.

잘 자고 있나~ 희동이~ 하며 들어가는 순간, 방바닥 구석에 누워 있는 희동이가 보였는데, 그 모습이 직감적으로 자는 모습은 아니었다.

머리 속에서 아니야를 외치며 껑충 뛰어가서 얼굴을 보았다.

머리 맡에 분홍색 맑은 물이 잔뜩 흘러 있고 입에 거품이 나와 있었다.

죽었다, 우리 희동이.

내 천사가 죽은 것이다.

우리가 챙겨주지도 못했고, 병원 한 번 데려가보지 못했는데, 내 천사가 나를 떠난 것이다.

영원히.

정신없이 안방으로 뛰어가서 머리를 말리던 와잎을 불렀다.

달려온 와잎도 희동이의 믿기지 않는 모습에 둘이 희동이를 쓰다듬으며 정신없이 한참을 울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밤새 인터넷을 검색했다.

머리 맡에 흘러 있던 액체는 폐수종으로 인한 폐액이었고, 심근비대증으로 인해 폐수종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유전적인 질병이었고, 하필 희동이가 그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건강하다고만 알고 있던 나는 그제야 고양이의 질병에 대해 알게되었다.

그 사랑하던 나의 영혼의 반쪽이 가버리고 나서야 고양이에 대해 알게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우리가 희동이 아픈 걸 눈치채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에 대해서 희동이가 우리를 벌 주는 것 같았다.

나의 희동이가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나를 떠나버렸고, 그 미안함에, 그 허무함에 나는 살아 있는게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와잎은 나중에 그랬다. 숨을 쉴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파서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고.

나 역시 그랬지만 차마 힘들어하는 와잎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와잎에게도 희동이는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희동이는 소중한 존재 이상이었고 내 영혼의 일부였다.

밤 새 잠을 못자다가 새벽 4시 쯤 잠깐 눈을 붙이고 곧 다시 눈이 떠졌다.

그나마 다행히도 정원이 있는 집이 나에게 있었다.

희동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아들이 선택한 주목나무 밑에 묻어 주기로 했다.

찾아보니 다행히 희동이가 들어갈만한 종이박스가 있었다.

희동이가 죽은 후 얼마 안되어 발견했기 때문에 사후경직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래서 몸을 냥모나이트 자세로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 상태로 종이박스에 넣어서 밤 새 우리 방에서 같이 있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평소 좋아하던 거실 소파에 데려다 놓았다.

오후에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희동이가 보일 때마다 눈물이 터져나와서 일찍 묻어주기로 했다.

평소에 먹던 사료와 장난감, 그리고 큐브 간식을 박스에 넣어 주었다.

희동이가 좋아하던 주목나무는 한 쪽 가지들이 살짝 들려 있었다.

마치 희동이를 품어주려 했던 것처럼.

그 밑에 구덩이를 파고 희동이를 넣었다.

흙을 덮는 내내 자꾸 멈추고 울었다.

눈물이 안경으로 떨어져서 앞이 안보여 흙을 제대로 덮을 수 없었다.

울다가 덮다가 하면서 봉분을 만들고 와잎과 넋 놓고 그 봉분을 쳐다보았다.

봉분이 희동이의 넓직한 궁뎅이를 닮아서 봉분만 봐도 희동이가 보였다.

희동이 머리 부분에서 삽 하나 길이 정도에 앵두나무가 있었다.

나의 희동이는 앵두나무와 주목나무가 될 것이다.

이제 이 집에서 이사를 가지 못할 것 같다.

아들에게 물려줘야하겠다.

이 집은 3층 집이라서 나이를 먹으면 층간 이동이 힘들어, 그 때는 도심으로 들어가려했었지만, 이 집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 이 집에서 평생 살 것이다.

캘린더에 희동이가 무지개 다리 건넌 날이라고 적었다.

와잎에게 말했더니 고양이 별로 돌아간 날이라고 하란다.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고 말하지 말라고. 그러면 여기로 다시 오지 못할 것 아니냐고. 희동이는 내가 죽었을 때 다시 나에게 와야하니까 고양이 별로 가지 말고 잠시 무지개 다리 건너갔다가 다시 와야 한다고.

그렇게 죄없는 와잎에게 울면서 소리를 쳐댔다.



그렇게 울면서 하루를 보내고, 회사에는 연차를 내서 며칠 쉬고 와잎과 같이 있었다.

와잎도 충격이 커서 혼자 있는 것은 좋을 것 같지 않았고 나 역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음 날 집에서 있자니 희동이 묘가 보여서 너무 힘들어, 어디 나가려고 하니 와잎이 낙산사에 가서 희동이 명복을 빌어주자고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운전하면서 때때로 갑자기 희동이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와, 고생하면서 운전을 했다.

요즘 차는 자동 운전 기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낙산사에 도착해서 천천히 한 바퀴 돌다가 부처님에게 희동이 명복을 빌며 초를 공양했다.


그렇게하고 내려 오는 길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생인 아들은 학교 기숙사에 있었고, 신입생들과 엠티를 가 있어서 희동이 죽음을 알리지 않았었다.

희동이 일을 말해주었다.

생글 생글 웃으며 엠티 다녀온 일을 말하던 아들은 희동이가 죽었다고 하자 말을 잇지 못하고 놀라서 소리를 쳤다.

나중에 우리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순간에는 우리가 장난하는 것으로 믿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도 전화 너머 아들과 같이 울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희동이 묘만 보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어서, 묘 위에 꽃을 심기로 했다.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와 백리향을 심었다.

그 꽃말이 적당하지는 않았다. 나를 잊지 말라니. 희동이를 잊을 수 없는게 문제인데.

하지만 희동이는 예쁜 물망초 꽃이 될 것이고 앵두나무가 될 것이며 주목나무가 되어 천년을 살면서 백리에 자신의 향을 남길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나의 소중한 고양이, 희동이가 갔다.

내가 어떤 장난을 해도 짜증 안 내고 받아주며, 배를 부르르해도 뜅글 뜅글 눈을 동그라게 뜨면서도 쩝쩝 거리며 참아주던 내 고양이, 내 옆에서 늘 나에게 체온을 나눠주며 나에게 기대 있던 내 고양이, 나에게 따라오라고 장난을 걸던 예쁜 내 고양이, 내가 힘들 때 나를 삶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고 내가 살만해지니까 나를 떠난 나의 천사 희동이.

희동이는 나를 구해주러 이 세상에 와서 나에게 온 것이었다.

희동아, 사랑한다. 아빠가 죽으면 꼭 아빠에게 와야한다. 그 때는 헤어지지 말고 영원히 같이 행복하게 살자. 보고 싶어 희동아. 고양이를 몰라서 허망하게 너를 보낸 아빠가 미안해.

꼭 다시 보자구 이 녀석아. 그때까지 네가 늘 그랬듯이 여유롭고 행복하게 잘 있어.


Leonard.


CBR650F 스티어링 댐퍼 장착 시 주의할 점, 장착 후 시험 주행 200km. 여주, 괴산

 CBR650F에 장착할 스티어링 댐퍼를 구매해 놨고, 드디어 장착이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주변 지인이 핸들 털림으로 사고를 당한 터라, 이게 없이 운행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드디어 주말이 되어서 스티어링 댐퍼를 설치했다. 기본 설치는 유튜브 이곳에 잘...